손대범 기자 | date : 2012-01-26

D·R·A·F·T 로 돌아보는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
KBL 2012 드래프트가 1월 31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3층 다이아몬드 볼룸에서 개최된다. 이번 드래프트에서도 최부경와 김시래, 김승원 등 주목해야 할 새 얼굴들이 대거 프로지명을 노리고 있다.
이에 앞서 점프볼은 1998년 이후 열린 지난 14번의 드래프트에서 나온 다양한 이슈들을 D.R.A.F.T 다섯 자를 이용해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DOMINATE
압도적인 1순위
1997년 NBA 드래프트는 ‘팀 던컨 드래프트’라는 별칭이 붙었다. 웨이크 포리스트 대학에 재학 중이던 던컨은 당장 NBA에 와도 정상급 기량이라는 평가가 붙었던 선수였기에, 그 어떤 팀이 1순위 지명권을 잡든 던컨을 지나칠 리가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르브론 제임스의 1순위 지명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었다.
이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1순위로 선발된 사례는 KBL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드래프트가 처음 열린 1998년에는 고려대의 현주엽이 SK에 지명돼 서장훈과의 트윈타워를 구축했다. 비록 현주엽은 1999년 12월 25일 빅 딜로 이적했지만, 누가 1순위 지명권을 가졌든 현주엽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슈퍼스타였다. 2000년 드래프트의 이규섭도 마찬가지. 99-00시즌 당시 삼성이 SK가 제시한 ‘현주엽 카드’를 마다할 수 있었던 것도 이규섭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는 데뷔 이전부터 상당한 기대를 모았던 선수였다.
비록 프로데뷔 후 자신의 색깔을 바꾸긴 했지만, 데뷔 첫 해에 삼성의 통합우승을 도운 만큼 이름값은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겠다. 2002년은 단연 ‘김주성 드래프트’였다. 일찌감치 서장훈의 대를 이을 빅 맨으로 여겨졌던 그는 데뷔 시즌에 허재(현 전주 KCC 감독)와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등 맹위를 떨쳤다. 그는 현재 국내 최고몸값을 자랑하는 대형스타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100% 1순위’라는 수식어는 주로 장신선수들에게 붙었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는 하승진이 어렵지 않게 1순위로 선발됐다. 애초 김민수(2순위, SK)와 윤호영(3순위, 동부) 등이 1순위로 거론되던 드래프트였지만, 드래프트를 3개월 여 앞둔 시점이었던 2007년 11월, 하승진이 국내무대 U-턴을 선언하고 드래프트 참가를 접수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하승진은 대한농구협회 소속이 아닌 일반인자격으로 참가해 1순위에 지명된 최초의 선수였다. 물론 일찌감치 NBA와 국제대회에서 그 기량이 검증된 선수였기에 별도의 검증과정은 필요 없었지만 말이다.
한편 작년 드래프트 역시 1순위는 팀만 가려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중앙대 오세근은 일찌감치 남다른 기량을 인정 받아 누가 데려가느냐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2ROUND
2라운드에 지명된 깜짝스타들
선수기용폭이 좁은 프로농구 특성상 특급신인이 아닌 이상 신인들이 팀에서 자리를 꿰차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2라운드 이후에 지명된 신인들은 계약기간도 짧아 ‘생존’이 우선과제처럼 보일 때도 있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감독 및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2라운드에 지명되어 10년 가까이 핵심멤버로 활약한 신종석(前 동부, KT&G)과 정락영(前 코리아텐더, SK)은 2라운드 지명선수들의 롤-모델과 같은 선수들이다. 1998년 드래프트에서 14위로 지명된 신종석은 뛰어난 외곽슛과 수비능력으로 주전 못지 않은 기회를 누렸다. 2003년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보여준 신들린 듯한 슛 감각이 없었다면 김주성의 첫 우승도 없었다. 코리아텐더에서 황진원, 에릭 이버츠 등과 ‘달리는 농구’의 진수를 보여준 정락영도 마찬가지.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신종석 바로 다음에 동양(현 대구 오리온스)에 지명됐던 그는 다부진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오랜 기다림 끝에 스타의 결실을 맺은 선수도 있다. 창원 LG의 강대협이 그 주인공. 2000년 드래프트에서 대전 현대(현 KCC)에 전체 12위로 지명됐던 그는 기회가 올 때까지 숱한 이적을 겪어야 했다. 농구를 그만둘 생각도 해봤다던 그는 그러나, 동부 이적 후 2007년 기량발전상을 수상하고 2007-08시즌에는 팀 우승에 기여했다.
이현호도 2라운드 지명선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선수다.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8위로 삼성에 지명된 이현호는 2라운드 출신으로는 최초로 신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허슬 플레이로 정평이 난 그는 KT&G를 거쳐 전자랜드에서 핵심멤버로 활약하고 있으며 올 해는 첫 올스타의 감격도 누리게 됐다.
김현중(LG)과 ‘야생마’ 김동욱(오리온스) 역시 고교, 대학 시절의 기대치에 부응하기까지 오랜 시련을 겪었다. 각각 2004년과 2005년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두 선수 모두 군 전역 후 잘 풀린 케이스. 특히 김동욱은 올 시즌 오리온스로 트레이드 된 후 기량이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LL-TIME BEST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클래스는?
역대 최고의 드래프트 클래스는 언제일까? 사실, 선수의 활약을 두고 ‘역대 최고’를 논할 때는 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후배들은 선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룬 것이 부족하기에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하지만 올스타 지명, 우승, 국가대표, 그리고 미디어의 관심 등을 종합해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갈만한 평가는 가능해진다. 가장 많은 스타를 배출한 드래프트는 1999년과 2007년이었다. 사상 두 번째 드래프트였던 99년에는 조상현과 조우현, 황성인, 김성철, 강혁, 조동현, 하상윤 등이 지명됐고, 모두 7명이 올스타에 선발됐다.
또 1순위부터 5순위까지의 지명선수 중 김성철(4순위)을 제외한 모두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맛봤다.
‘황금세대’라 불린 2007년 드래프트는 수많은 젊은 스타가 탄생했다. 1라운드 지명선수 10명 중 6명이 올스타에 선발됐고, 모두가 국가대표가 됐다. 김태술과 양희종(KGC인삼공사), 이동준(오리온스), 정영삼(전자랜드/상무), 이광재(동부/상무/전역예정), 함지훈(모비스/상무/전역예정)가 그들이다. 아직 커리어가 짧아 우승경력을 비교하기에는 이르지만 향후 10년을 이끌 세대로 각광받아온 만큼 미래를 기대해볼 만하다. 반면 가장 임팩트가 적었던 드래프트는 2003년이었다. 1순위 지명선수 김동우(모비스)를 비롯해 단 한 명의 올스타도 배출하지 못했으며, 당시 4순위로 TG삼보에 지명된 이동준(현 KCC)을 제외하면 1라운드 선수 중에서는 한 명도 우승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FORWARDS
1순위, 포워드가 대세
역대 1순위 지명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한양대 출신의 양동근이 모비스에 지명되기 전까지 1순위의 주인공은 포워드였다. 역사를 돌아볼 때 가드가 1순위에 지명된 사례는 단 4번뿐이었다. 양동근 이후에는 김태술(2007년)과 박성진(2009년), 박찬희(2010년)가 전부였다. 센터는 2008년의 하승진(223cm)과 2011년의 오세근(200cm)뿐이었다.
1순위로 지명된 포워드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김주성, 이규섭, 송영진처럼 인사이드에서 힘을 보탤 수 있는 포워드였거나, 방성윤이나 조상현, 전정규처럼 슈팅능력을 갖춘 포워드였다. 1순위 지명권을 갖춘 팀들 모두 리빌딩이 필요한 하위팀이었기에 새 주축을 뽑을 때 기왕이면 팀 살림에 즉시 도움이 될 만한 선수를 선호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드가 실력여부를 떠나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되지 못하는 경향은 NBA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0년을 돌아봤을 때 1순위에 선발된 가드는 1996년의 앨런 아이버슨과 2008년의 데릭 로즈, 2010년의 존 월, 2011년의 카일리 어빙이 전부였다. 그러나 1순위=신인상 공식은 잘 성립되지 않았다.
한편, 총 14번의 드래프트가 진행된 가운데, 1순위가 신인상을 가져간 경우는 60% 정도다. 이규섭(2000년, 삼성)과 김주성(2003년, 동부), 양동근(2004년, 모비스), 방성윤(2005년, SK), 김태술(2007년, SK), 하승진(2008년, KCC), 박성진(2009년, 전자랜드), 박찬희(2010년, KGC인삼공사)가 바로 그들이다.
TEAMS
행운의 팀, 불운의 팀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로 인해 시스템이 바뀌기 전까지 드래프트 로터리픽은 플레이오프 탈락팀들의 차지였다. 이들은 동일한 확률로 전체 1순위 지명권 획득에 도전했고 구슬추첨에 의해 희비가 엇갈렸다. 이중 전자랜드는 한동안 추첨운이 유독 따라주지 않아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또 유망주 관리를 잘못한 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잘 뽑았지만 정작 재미는 다른 팀이 봤다. 우선 추첨운부터 이야기해보자. 이들은 신세기 시절이었던 2001년에는 1~4순위 추첨에서 4순위에 걸렸고, 2004년에도 마찬가지로 4순위에 걸렸다. 또 2007년과 2008년 드래프트에서도 4순위에 그쳤다. (그러나 2007년 지명선수인 정영삼은 ‘황금세대’ 드래프티답게 전자랜드의 주역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늘 불운이 따른 것은 아니었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는 전체 1순위 지명권 획득에 성공해 슈터 전정규를 영입했다. 또 2009년에도 중앙대 출신의 가드 박성진을 1순위로 얻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의 상위 픽 지명자들은 유니폼을 오래 입지 못한 채 이적해야 했는데, 이적 후에 좋은 활약을 펼쳐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2001년 지명자 이현준은 전주 KCC에서 나름 쏠쏠히 활용됐다. 2004년 4순위 김도수 역시 KT 이적 후 특유의 오프 더 볼 무브로 중용됐다. 2008년 4순위 강병현은 서장훈과 트레이드 되어 KCC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8순위 김영환 역시 오리온스를 거쳐 전자랜드에 가세했지만 정작 데뷔시즌은 KT에서 치렀다. 2006년 1순위 전정규도 더이상 전자랜드 선수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동부와 모비스는 1순위 지명권으로 리빌딩의 근간을 마련한 팀이다. 동부는 삼보 시절 김주성 영입으로 강자로 우뚝 섰다. 모비스는 전자랜드와 대비되는 팀이다. 이들은 2년 연속 1순위 선수 영입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2003년 1순위 김동우에 이어, 트레이드로 얻은 2004년 1순위 양동근에 힘입어 유재학 감독은 2005-06시즌 정규리그 우승, 2006-07시즌 및 2009-2010시즌 통합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게다가 1순위 지명권이 아니더라도 모비스는 팀의 구미에 맞는 유망주를 뽑아 우승의 밑거름으로 활용했다. 2006년과 2007년 우승당시 공헌자였던 하상윤과 이병석은 모두 드래프트를 통해 얻은 재원이었다. 비록 2002년 2순위 정훈은 지키지 못했지만, 2005년에도 2순위의 행운을 얻어 김효범을 선발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전체 10순위 지명권으로 함지훈과 천대현이라는‘잭 팟’을 터트렸다. 2007년 11순위 지명선수 박구영도 큰 몫을 해냈다.
한편 아직까지 한번도 1순위 지명권을 못 가져본 팀도 있다. 오리온스다. 오리온스는 2001년 드래프트 3순위로 김승현을 지명한 이래 2007년까지 한번도 쉼없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로터리 지명권과는 거리가 먼 팀이 되어있었다. 그 와중에도 박지현, 오용준, 주태수, 백인선 등을 선발해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플레이오프 탈락이 어색해지지 않은 최근에는 팀 운명을 바꿔줄 특급 1순위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만 2011년 3순위 최진수가 가세하면서 팀의 미래도 밝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늘 중간 이상의 성적을 냈던 KGC인삼공사도 1순위 지명권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2010년과 2011년에 연속 1순위 지명권을 획득, 박찬희와 오세근을 나란히 지명하면서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KGC인삼공사는 2010년 드래프트서 2순위로 이정현까지 얻어 화력을 강화했다.
SIDE STORY | 숫자로 돌아보는 드래프트 이슈
2 2부대학선수의 1군 드래프트 지명
드래프트에서 2부리그 출신선수의 이름이 불린 건 단 두 차례다. 1998년 청주대 출신의 박용호가 청주 SK에 선발된 것이 처음이고, 2003년 드래프트에서 16위로 지명된 박상률(목포대)이 두 번째다. 그러나 박용호가 금방 프로무대에서 잊혀진 것과는 달리, 박상률은 지금도 프로선수로서 살아 남아있다. 웨이브공시에 이어 프로 2군으로 떨어지는 등 많은 시련이 있었지만 지금 그는 KGC인삼공사의 백업가드로 활약하고 있다. 2003년에 1부리그에 올라섰지만 여전히 인지도가 낮은 조선대에서도 2명의 프로선수가 배출됐다. 2007년 최고봉과 남정수는 각각 KTF와 모비스에 지명되는 영예를 안은 바 있다. 한편 2004년의 이항범은 고졸선수 신분으로 지명(전체 14순위)된 첫 선수였고, 중간에 농구를 그만둔 정상헌(고려대)은 일반인 신분으로 참가해 1라운드에 지명된 첫 선수였다. 불행히도 두 선수 모두 지금은 프로선수 신분이 아니다. 한편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는 최초로 상명대 출신 선수(임상욱)가 30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됐고, 대학을 거치지 않은 순수(?) 고졸 선수로 이우균이 2군에서 모비스에 선택되기도 했다.
9 1순위 지명자들의 우승횟수
1순위 지명자들의 통산 우승횟수는 몇 번이나 될까?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열린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선발된 선수들의 우승횟수는 모두 11번이었다. 2순위 4번, 3순위 3번에 비해 월등히 많은 횟수다. 2003년 1순위 김주성은 3개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양동근과 하승진, 이규섭, 김동우가 각각 2번씩 차지했고 조상현이 1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18 가장 낮은 순위의 신인왕
2003년 신인상 수상자는 1라운드가 아닌 2라운드에서 배출됐다. 고려대 출신으로서 전체 18위에 지명됐던 이현호는 3.2득점 1.7리바운드로 그리 돋보이는 기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2003년 신인들이 모두 부진했던 탓이었다.
25 최다 지명
가장 많은 선수가 지명된 해는 2007년이었다. '황금세대'의 영향일까. 1, 2라운드에서 모든 팀이 선수를 선발한데 이어 이후에도 5명의 선수가 추가로 선발됐다. 모비스는 그 해 드래프트에서 함지훈과 박구영, 최고봉과 강우형 등 4명을 뽑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팀에 도움이 된 선수도 많았다. 2라운드에 지명된 신인 중에서도 김영수(오리온스)와 박구영(모비스), 정병국(전자랜드)은 주전과 식스맨을 오가며 활약했고, 김재환(SK)과 송창무(LG) 역시 신인답지 않은 플레이로 미래를 기대케 했다.
한편 2004년과 2009년에는 겨우 17명만이 선발돼 이 부문 최저 기록을 남겼다. 2004년에는 2라운드에서 KTF, SBS, KCC가 지명권을 포기해 아쉬움을 남겼다.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가 함께 진행된 2009년에는 정규 드래프트에서 국내선수가 17명만이 선발됐는데, 이후 열린 2군 드래프트에서 12명의 선수가 추가로 선발되면서 농구인생을 이어갈 기회를 얻기도 했다.
글 손대범 기자 사진 KBL PHOTOS, 문복주 기자